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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념처

고용한 정원 2023. 5. 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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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념처는 마음[心]을 지관하여 알아차리는 것으로,

간략히 정의하자면, 마음을 무상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또는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것[觀心如心]이다.

 

마음이란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식 

또는 여기에 말나식과 아뢰야식을 더한 8식을 말한다.

 

심념처 수행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는,

심념처는 '마음이 항상하는 존재(법)가 아니라

생각 생각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하는 존재라는 것을

지관하여 알아차리거나' 또는 '마음을 마음 그대로 지관하여 알아차려서' 

무상의 진리를 실천적으로 깨우치는 것이다

팔리어 경전 중 《디가 니까야》 제22경 〈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에 나타나는

심념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탐욕이 있음에 대한 알아차림
  2. 탐욕이 없음에 대한 알아차림
  3. 분노가 있음에 대한 알아차림
  4. 분노가 없음에 대한 알아차림
  5. 어리석음이 있음에 대한 알아차림
  6. 어리석음이 없음에 대한 알아차림
  7. 위축됨이 있음에 대한 알아차림
  8. 산란함이 있음에 대한 알아차림
  9. 넓은 마음이 있음에 대한 알아차림
  10. 넓은 마음이 없음에 대한 알아차림
  11. 우월한 마음이 있음에 대한 알아차림
  12. 우월한 마음이 없음에 대한 알아차림
  13. 고요한 마음이 있음에 대한 알아차림
  14. 고요한 마음이 없음에 대한 알아차림
  15. 해탈한 마음이 있음에 대한 알아차림
  16. 해탈한 마음이 없음에 대한 알아차림

 

법념처

법념처는 (法) 즉 존재 또는 현상을 지관하여 알아차리는 것으로,

간략히 정의하자면, 온갖 존재 또는 현상을 무아(無我)라고

즉 나라고 부를만한 자성이 없는 것이라고 관하는 것]또는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觀法如法]이다.

법념처 수행의 목적이라는 측면에서는, 법념처는 '모든 생겨난 존재가 인연의 화합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무아라는 것을 지관하여 알아차리거나'

또는 '법을 법 그대로 지관하여 알아차려서' 무상의 진리를 실천적으로 깨우치는 것이다.

팔리어 경전 중 《디가 니까야》 제22경 〈대념처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에 나타나는 법념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다섯 장애[五蓋]에 대한 알아차림
  2. 다섯 집착된 온[五取蘊]에 대한 알아차림
  3. 여섯 터전[六入處]에 대한 알아차림
  4. 일곱 깨달음 요소[七覺支]에 대한 알아차림
  5.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의 법에 대한 알아차림

4정단

4정단(四正斷)은 단단(斷斷) · 율의단(律儀斷) · 수호단(隨護斷) · 수단(修斷)을 말한다.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에서는 4정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T15n0604_p0180c18║佛言:「諸比丘!若彈指間,惟行未生惡法不令

T15n0604_p0180c19║生(율의단),勸意治行,精進攝意,是為精進行禪,為如
T15n0604_p0180c20║佛教,不是愚癡食人施,何況多行者,撮取其
T15n0604_p0180c21║要;若彈指間,惟行已生惡法即得斷(단단),若惟
T15n0604_p0180c22║行未生善法便發生(수호단),及已生善法立不忘,增
T15n0604_p0180c23║行得滿(수단),勸意治行,精進攝意,皆如上說,何況
T15n0604_p0180c24║多行者;是故可念行四意斷(4정단)。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법은 생겨나지 못하게 하며(율의단),

뜻을 권하여 행을 다스리고 정진하여서

뜻을 거두기를 행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精進)하여

선(禪)을 행하는 것이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이니,

이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보시만 먹는 것이 아닐진대,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 요체를 모아 잡아서 만약 손가락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이미 생겨난 악법(惡法)은 곧 끊기를 행하며(단단),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법(善法)은 곧 생겨나게 하고(수호단),

이미 생겨난 선법은 세워 잊지 않아서 행을 더하여 원만함을 얻으며(수단),

뜻을 권하여 행을 다스리고 정진하여 뜻을 거둔다면,

모두 위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하는 이이겠느냐?

그러므로 4정단(四正斷, 4의단 四意斷)을 생각하여 행해야 하느니라.”

—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

위의 《불설선행삼십칠품경》에 나타난 바와 같이 4정단의 각 요소를 간략히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 단단(斷斷): 이미 생겨난 악을 끊는 것
  • 율의단(律儀斷):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을 생겨나지 못하게 하는 것
  • 수호단(隨護斷):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을 생겨나게 하는 것
  • 수단(修斷): 이미 생겨난 선을 강화하는 것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먼저, 단단(斷斷) · 율의단(律儀斷) · 수호단(隨護斷) · 수단(修斷)에 공통된 낱말 '단'(斷)에는

번뇌를 끊는다[斷除煩惱], 결단하여 실행한다[決定而斷行], 게으름[懈怠]을 바로 지금 끊는다[正斷]는 세 가지 뜻이 있다.

 

단단은 끊어야 할 것[斷]을 끊는다[斷] 또는 끊는 것[斷]을 결단하여 실행한다[斷]는 것으로,

이미 생겨난 즉 현행하고 있는 5악 · 10악 · 5개 · 수번뇌를 비롯한

제반 번뇌를 끊기 위해 바로 지금 게으름을 끊고 정진하는 것을 뜻한다.

 

율의단은 율의(律儀) 즉 계율로써 미리 끊는다[斷] 또는 율의로써 결단하여 실행한다[斷]는 것으로,

계율을 지킴으로써 그 계율의 상대가 되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즉 아직 현행하지 않은 5악 · 10악 · 5개 · 수번뇌를 비롯한 제반 번뇌를 끊기 위해

즉 그 번뇌가 계속 현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바로 지금 게으름을 끊고 정진하는 것을 뜻한다.

 

수호단은 따라 지켜야 할 것을 따라 지켜서[隨護] 끊는다[斷] 또는 따라 지키는 것[隨護]을 결단하여 살행한다[斷]는 것으로, 아직 현행하지 않은 선법(善法) 또는 정법(正法) 또는 무루법을 따라 마음(몸과 말과 뜻)을 지킴으로써

그것을 가로막고 현행하지 못하게 하는 번뇌를 끊거나 조복시키고

결국 그 선법 또는 정법 또는 무루법이 현행하게 하기 위해 바로 지금 게으름을 끊고 정진하는 것을 뜻한다.

 

수단은 반복하여 닦아서[修] 끊는다[斷] 또는 반복하여 닦는 것[修]을 결단하여 실행한다[斷]는 것으로,

이미 현행한 선법 또는 정법 또는 무루법을 더욱 닦아 증장시켜

그것의 완전한 실현을 가로막고 현행하지 못하게 하는 번뇌를 끊어 그것이 완전히 현행하게 하기 위해

바로 지금 게으름을 끊고 정진하는 것을 뜻한다.

《잡아함경》 제31권 제877경 〈사정단경 ③〉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T02n0099_p0221a21║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

T02n0099_p0221a22║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有四正斷。何等
T02n0099_p0221a23║為四?一者斷斷,二者律儀斷,三者隨護斷,
T02n0099_p0221a24║四者修斷。云何為斷斷?謂比丘亦已起惡
T02n0099_p0221a25║不善法斷,生欲、方便、精勤、心攝受,是為斷
T02n0099_p0221a26║斷。云何律儀斷?未起惡不善法不起,生欲、方
T02n0099_p0221a27║便、精勤、攝受,是名律儀斷。云何隨護斷?未起
T02n0099_p0221a28║善法令起,生欲、方便、精勤攝受,是名隨護
T02n0099_p0221a29║斷。云何修斷?已起善法增益修習,生欲、方便、
T02n0099_p0221b01║精勤、攝受,是為修斷。」 佛說此經已,諸比丘
T02n0099_p0221b02║聞佛所說,歡喜奉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4정단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단단이요,

둘째는 율의단이요,

셋째는 수호단이요,

넷째는 수단이니라.

 

어떤 것을 단단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이미 일어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으려는 의욕을 내어,

방편을 써서 꾸준히 노력하고 마음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을 단단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율의단이라 하는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의욕을 내어,

방편을 써서 꾸준히 노력하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율의단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수호단이라고 하는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착한 법을 일어나게 하려는 의욕을 내어,

방편을 써서 꾸준히 노력하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수호단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수단이라 하는가?

이미 일어난 착한 법을 더욱 닦아 익히려는 의욕을 내어,

방편을 써서 꾸준히 노력하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수단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잡아함경》 제31권 제877경 〈사정단경 ③〉한문본 & 한글본

 

4신족.

 

4신족(四神足)은 욕신족(欲神足) · 근신족(勤神足) · 심신족(心神足) · 관신족(觀神足)을 말한다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에서는 4신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T15n0604_p0180c25║佛言:「諸比丘!若彈指間,惟行欲定(욕신족)斷生死,惟

T15n0604_p0181a01║神足,是為最精進行禪,為如佛教,不是愚癡
T15n0604_p0181a02║食人施,何況多行者,撮取其要;若彈指間,惟
T15n0604_p0181a03║行精進定(근신족),若惟行意定(심신족)
T15n0604_p0181a03║及戒定(심신족)斷生死,惟神
T15n0604_p0181a04║足,皆如上說,何況多行者;是故可念行四神
T15n0604_p0181a05║足。」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욕신족(欲神足, 욕정 欲定)을 행하여 생사를 끊고,

신족(神足)을 사유(思惟)한다면, 이것이 바로 최상의 정진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보시만 먹는 것이 아닐진대,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 요체를 모아 잡아서 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근신족(勤神足, 정진정 精進定)을 행하며,

심신족(心神足, 의정 意定) 및 관신족(觀神足, 계정 戒定)을 행하여 생사를 끊고,

신족을 사유한다면, 모두 위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러므로 4신족(神足)을 생각하여 행해야 하느니라.”

—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

욕신족은 욕구[欲] 즉 마음의 희구하는 힘

즉 기도(祈禱)나 염불을 통해 인발(引發)된 선정과 그 선정을 통해 성취한 신통력을 뜻한다.

 

근신족은 정진[勤] 즉 마음의 열심히 행하는 힘

즉 을 끊고 을 증장시키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인발된 선정과 그 선정을 통해 성취한 신통력을 뜻한다.

 보시 즉 봉사활동을 통해 인발된 선정과 그 선정을 통해 성취한 신통력을 뜻한다.

 

심신족은 마음[心]의 생각하는[念] 힘

즉 주의력과 집중력과 자각력 즉 4념처를 통해 인발된 선정과 그 선정을 통해 성취한 신통력을 뜻한다

 

관신족은 마음의 사유하는[觀, 尋] 힘

즉 불법(佛法)의 이치를 사유함[觀]을 통해 인발된 선정과 그 선정을 통해 성취한 신통력을 뜻한다.

불법의 이치를 사유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4성제 · 12연기법 · 37도품 · 4무량심 · 6바라밀 · 의 이치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4신족은 선정 즉 삼매를 성취하는 방법으로 네 가지 길이 있음을 뜻한다. 요가에 대비하자면, 욕신족은 박티 요가, 근신족은 카르마 요가, 심신족은 라자 요가, 관신족은 즈냐나 요가에 해당한다. 그리고 선정은 반야가 발현되게 하는 직접적인 수단 또는 원인이다.

5근

 

5근(五根)은 신근(信根) · 진근(進根) · 염근(念根) · 정근(定根) · 혜근(慧根)을 말한다.[49][52]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에서는 5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T15n0604_p0181a05║佛言:「諸比丘!若彈指間,惟行信根(신근),以見四

T15n0604_p0181a06║喜之事,不離佛亦法與眾及戒,是為精進行
T15n0604_p0181a07║禪,為如佛教,不是愚癡食人施,何況多行者,
T15n0604_p0181a08║撮取其要;若彈指間,惟行精進根(진근),以見四意
T15n0604_p0181a09║斷(4정단);若惟行念根(염근),以見四意止(4념처);若惟行定根(정근),以
T15n0604_p0181a10║見四禪;若惟行慧根(혜근),以見四諦,皆如上說,何
T15n0604_p0181a11║況多行者;是故可念行五根(5근)。」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신근(信根)을 행하여 4희(喜)의 일을 보며,

부처님과 법과 대중들과 계를 여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보시만 먹는 것이 아닐진대,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 요체를 모아 잡아서 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진근(進根, 정진근 精進根)을 행하여

4정단(四正斷, 4의단 四意斷)을 보고, 염근(念根)을 행하여 4념처(四念處, 4의지 四意止)를 보고,

정근(定根)을 행하여 4선(禪)을 보고, 혜근(慧根)을 행하여 4제(諦)를 본다면,

모두 위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

러므로 5근(根)을 생각하여 행해야 하느니라.”

—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

5근은 번뇌를 항복시키고 성도의 길에서 향상(向上)하게 하는 다섯 가지 마음작용으로,

5무루근(五無漏根) 또는 5선근(五善根)이라고도 한다.

 

《잡아함경》 제26권 제646경 〈당지경〉(當知經)에 따르면 5근은 다음을 뜻한다.

  1. 신근(信根): 4불괴정(四不壞淨)을 뜻한다. 4불괴정은 4증정(四證淨)이라고도 하는데,                                                  불증정(佛證淨) · 법증정(法證淨) · 승증정(僧證淨) · 계증정(戒證淨)을 말한다.                                                                    무루지로 4성제의 이치를 증득함에 의하여 불 · 법 · 승 3보와 계(戒)에 대해 바른 믿음을 내는 것이다
  2. 진근(進根): 4정단(四正斷)을 뜻한다. 즉, 37도품의 제2과인 단단 · 율의단 · 수호단 · 수단을 통칭하여 진근이라고 한다.
  3. 염근(念根): 4념처(四念處)를 뜻한다. 즉, 37도품의 제1과인 신념처 · 수념처 · 심념처 · 법념처를 통칭하여 염근이라고 한다.
  4. 정근(定根): 4선(四禪)을 뜻한다. 즉, 색계의 선정인 초선 · 2선 · 3선 · 4선을 통칭하여 정근이라고 한다.
  5. 혜근(慧根): 4성제(四聖諦)를 뜻한다. 즉, 고성제 · 집성제 · 멸성제 · 도성제를 아는 무루지를 통칭하여 혜근이라고 한다.

T02n0099_p0182b16║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
T02n0099_p0182b17║孤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有五根。何等
T02n0099_p0182b18║為五?謂信根、精進根、念根、定根、慧根。信根
T02n0099_p0182b19║者,當知是四不壞淨;精進根者,當知是四
T02n0099_p0182b20║正斷;念根者,當知是四念處;定根者,當知
T02n0099_p0182b21║是四禪;慧根者,當知是四聖諦。」 佛說此
T02n0099_p0182b22║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능력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 능력인가? 이른바 신근(信根) · 정진근(精進根) · 염근(念根) · 정근(定根) · 혜근(慧根)이니라. 신근이란 마땅히 4불괴정(不壞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정진근이란 4정단(正斷)임을 알아야 하며, 염근이란 4념처(念處)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정근이란 4선(禪)임을 알아야 하며, 혜근이란 4성제(聖諦)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잡아함경》 제26권 제646경 〈당지경〉(當知經)    한문본 & 한글본

한편, 《아비달마구사론》 제25권에 따르면 5근의 각 항목은 그 순서에 이유가 있다. 그 순서대로 먼저 인과법칙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즉 연기법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고, 그 믿음에 바탕하여 정진하고 즉 악을 끊고 선을 증장시키고자 하고, 이 결과 4념처를 수행하게 되고, 4념처 수행에 의해 4선 등의 선정에 들고, 4선 등의 선정을 통해 제법실상을 아는 지혜 즉 반야를 성취한다.[49]

T29n1558_p0132c13║信等何
T29n1558_p0132c14║緣次第如是。謂於因果先起信心為果修
T29n1558_p0132c15║因。次起精進由精進故念住所緣。由念
T29n1558_p0132c16║力持心便得定。心得定故能如實知。是故
T29n1558_p0132c17║信等如是次第。

‘신’ 등은 어떠한 연유에서 이와 같은 순서로 설해진 것인가? 이를테면 인과에 대해 먼저 신심(信心)을 일으킨 이는 결과를 얻기 위해 원인을 닦아야 하므로 다음으로 정진을 일으킨다. 정진으로 말미암아 염(念)은 소연에 머물게 되고, 염의 힘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바로 선정을 획득하게 되며, 마음이 선정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능히 참답게 아는 것이니, 그렇기 때문에 ‘신’ 등의 순서가 이와 같은 것이다.

— 《아비달마구사론》 제25권    한문본 & 한글본

5력

 이 부분의 본문은 5력입니다.

5력(五力)은 신력(信力) · 진력(進力) · 염력(念力) · 정력(定力) · 혜력(慧力)을 말한다.[54][55]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에서는 5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T15n0604_p0181a11║佛言:「諸比丘!若
T15n0604_p0181a12║彈指間,惟行信力(신력),從得四喜之事,令無能壞,
T15n0604_p0181a13║是為精進行禪,為如佛教,非是愚癡食人施,
T15n0604_p0181a14║何況多行者;若彈指間,惟行精進力(진력),若念力(염력),
T15n0604_p0181a15║若定力(정력),若慧力(혜력),皆如上說,何況多行者;是故
T15n0604_p0181a16║可念行五力(5력)。」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신력(信力)을 행하여 4희(喜)의 일을 얻어 능히 파괴할 수 없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보시만 먹는 것이 아닐진대,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진력(進力, 정진력 精進力)과 염력(念力)과 정력(定力)과 혜력(慧力)을 행한다면, 모두 위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러므로 5력(力)을 생각하여 행해야 하느니라.”

—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
한문본 & 한글본, 한문본의 괄호와 한글본의 일부는 편집자가 편집


5근은 번뇌를 항복시키고 성도의 길에서 향상(向上)하게 하는 다섯 가지 마음작용으로, 37도품의 제4과인 5근과 내용이 동일하다. 차이점은 5근에 비해 5력은 그 힘이 더 강해진 것이다.[49][55][119]

《잡아함경》 제26권 제675경 〈당지오력경〉(當知五力經)에 따르면 5력은 다음을 뜻한다.

  1. 신력(信力): 4불괴정(四不壞淨)을 뜻한다. 즉, 불증정(佛證淨) · 법증정(法證淨) · 승증정(僧證淨) · 계증정(戒證淨)을 통칭하여 신력이라고 한다.
  2. 진력(進力): 4정단(四正斷)을 뜻한다. 즉, 37도품의 제2과인 단단 · 율의단 · 수호단 · 수단을 통칭하여 진력이라고 한다.
  3. 염력(念力): 4념처(四念處)를 뜻한다. 즉, 37도품의 제1과인 신념처 · 수념처 · 심념처 · 법념처를 통칭하여 염력이라고 한다.
  4. 정력(定力): 4선(四禪)을 뜻한다. 즉, 색계의 선정인 초선 · 2선 · 3선 · 4선을 통칭하여 정력이라고 한다.
  5. 혜력(慧力): 4성제(四聖諦)를 뜻한다. 즉, 고성제 · 집성제 · 멸성제 · 도성제를 아는 무루지를 통칭하여 혜력이라고 한다.

T02n0099_p0185c09║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
T02n0099_p0185c10║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如上說。差別者:
T02n0099_p0185c11║「彼信力,當知是四不壞淨。精進力者,當知
T02n0099_p0185c12║是四正斷。念力者,當知四念處。定力者,當
T02n0099_p0185c13║知是四禪。慧力者,當知是四聖諦。」 佛說此
T02n0099_p0185c14║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의 소경에서 설한 것과 같으며, 다만 그와 다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믿음의 힘이란 4불괴정(不壞淨)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정진의 힘이란 4정단(正斷)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 생각의 힘이란 4념처(念處)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선정의 힘이란 4선(禪)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 지혜의 힘이란 4성제(聖諦)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잡아함경》 제26권 제675경 〈당지오력경〉(當知五力經)    한문본 & 한글본

7각지

 이 부분의 본문은 7각지입니다.

7각지(七覺支)는 염각지(念覺支) · 택법각지(擇法覺支) · 정진각지(精進覺支) · 희각지(喜覺支) · 경안각지(輕安覺支) · 정각지(定覺支) · 사각지(捨覺支)를 말한다.[14][69][70][71]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에서는 7각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T15n0604_p0181a17║佛言諸比丘:「若彈指間,惟行念覺意(염각지),以念所
T15n0604_p0181a18║當念,以愛念,以正念,為善法念,得志不忘,
T15n0604_p0181a19║是為精進行禪,為如佛教,不是愚癡食人施,
T15n0604_p0181a20║何況多行者,撮取其要;若彈指間,惟行法解
T15n0604_p0181a21║覺意(택법각지),其意經經分別解、隨順解;若惟行精進
T15n0604_p0181a22║覺意(정진각지),其身精進,意亦精進;若惟行愛覺意(희각지),知
T15n0604_p0181a23║所當愛,令意得喜;若惟行止覺意(경안각지),令身休止,
T15n0604_p0181a24║意亦休止;若惟行定覺意(정각지),令意住念亦住,志
T15n0604_p0181a25║不亂,不邪念;若惟行護覺意(사각지),為護行知所念,
T15n0604_p0181a26║知安身,令見道護惡念,安隱行事,事皆如上
T15n0604_p0181a27║說,何況多行者;是故可念行七覺意。」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염각지(念覺支, 염각의 念覺意)를 행하여서 마땅히 생각할 바를 생각하여 애념(愛念)과 정념(正念)으로 선법염(善法念)을 삼아 뜻을 얻어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정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보시만 먹는 것이 아닐진대,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 요체를 모아 잡아서 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택법각지(擇法覺支, 법을 이해하는 각의 法解覺意)를 행하여서 그 뜻을 경(經)마다 분별하여 알고 수순(隨順)하여 이해하며, 만약 정진각지(精進覺支, 정진각의 精進覺意)를 행하여서 그 몸이 정진하고 뜻도 또한 정진하며, 희각지(喜覺支, 애각의 愛覺意)를 행하여서 마땅히 사랑할 바를 알아 뜻으로 기쁨을 얻게 하며, 경안각지(輕安覺支, 지각의 止覺意)를 행하여서 몸이 휴지(休止)하고 뜻도 또한 휴지하게 하며, 정각지(定覺支, 정각의 定覺意)를 행하여서 뜻이 멈추고 생각도 또한 멈추며 뜻이 어수선하지 않고 삿된 생각을 하지 않게 하며, 사각지(捨覺支, 호각의 護覺意)를 행하고 행(行)을 호지(護持)하여 생각할 바를 알고 몸을 편하게 함을 알며, 도를 보아 악념을 호섭(護攝)하고 행하는 일마다 안온케 한다면, 모두 위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러므로 7각지(七覺支, 7각의 七覺意)를 생각하여 행해야 하느니라.”

—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
한문본 & 한글본, 한문본의 괄호와 한글본의 일부는 편집자가 편집

7각지는 (覺) 즉 보리 즉 지혜가 현행할 수 있게 하는 일곱 가지 마음작용이다.[70][71]

  1. 염각지(念覺支): 불도를 수행함에 있어서 잘 생각하여 지(止) · 관(觀)이 고르게 하는 것
  2. 택법각지(擇法覺支): 지혜로써 진실한 법과 허위의 법을 가리는 것
  3. 정진각지(精進覺支):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정법을 수행하는 것
  4. 희각지(喜覺支): 정법의 획득과 성취에 기뻐하는 것
  5. 경안각지(輕安覺支): 의각지(猗覺支)라고도 하며 몸과 마음이 경쾌하고 안온한 것
  6. 정각지(定覺支): 선정에 들어 마음에 산란함이 없는 것
  7. 사각지(捨覺支): 마음에 편파나 집착이 없어 균형된 것

《잡아함경》 제27권 제715경 〈식경〉(食經)에 따르면 7각지를 머물게 하고 존립하게 하는 자양분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염각지4념처(四念處)를 사유하는 것
  2. 택법각지선법(善法)과 불선법(不善法)을 가려 사유하는 것
  3. 정진각지4정단(四正斷)을 사유하는 것
  4. 희각지: 기쁨[喜]과 기쁜 곳[喜處]를 사유하는 것
  5. 경안각지: 몸의 쉼[身猗息]과 마음의 쉼[心猗息]을 사유하는 것
  6. 정각지4선(四禪)을 사유하는 것
  7. 사각지: 단계(斷界) · 무욕계(無欲界) · 멸계(滅界)의 3계를 사유하는 것

T02n0099_p0192c16║譬如身
T02n0099_p0192c17║依食而住、依食而立;如是七覺分依食而
T02n0099_p0192c18║住、依食而立。 「何等為念覺分食?謂四念處
T02n0099_p0192c19║思惟已,未生念覺分令起,已生念覺分轉生
T02n0099_p0192c20║令增廣,是名念覺分食 。「何等為擇法覺分
T02n0099_p0192c21║食?有擇善法,有擇不善法,彼思惟已,未生
T02n0099_p0192c22║擇法覺分令起,已生擇法覺分重生令增廣,
T02n0099_p0192c23║是名擇法覺分食。 「何等為精進覺分食?彼四
T02n0099_p0192c24║正斷思惟,未生精進覺分令起,已生精進覺
T02n0099_p0192c25║分重生令增廣,是名精進覺分食。 「何等為
T02n0099_p0192c26║喜覺分食?有喜,有喜處,彼思惟,未生喜覺分
T02n0099_p0192c27║令起,已生喜覺分重生令增廣,是名喜覺
T02n0099_p0192c28║分食。 「何等為猗覺分食,有身猗息、心猗息思
T02n0099_p0192c29║惟,未生猗覺分令起,已生猗覺分重生令增
T02n0099_p0193a01║廣,是名猗覺分食。 「何等為定覺分食?謂有
T02n0099_p0193a02║四禪思惟,未生定覺分令生起,已生定覺分
T02n0099_p0193a03║重生令增廣,是名定覺分食。 「何等為捨覺
T02n0099_p0193a04║分食?有三界。何等三?謂斷界、無欲界、滅界。
T02n0099_p0193a05║彼思惟,未生捨覺分令起,已生捨覺分重生
T02n0099_p0193a06║令增廣,是名捨覺分食。」

비유하면, 몸은 음식을 의지해 머물고 음식을 의지해 존립하는 것과 같이, 7각지[覺分]도 자양분을 의지해 머물고 자양분을 의지해 존립한다. 어떤 것을 염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4념처를 생각하면 아직 생기지 않은 염각지는 일어나게 하고, 이미 생긴 염각지는 더욱 생겨 많아지게 한다. 이것을 염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택법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착한 법을 가리고[擇] 착하지 않은 법을 가려 그것을 생각하면 아직 생기지 않은 택법각지는 일어나게 하고, 이미 생긴 택법각지는 거듭 생겨 더욱 많아지게 한다. 이것을 택법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정진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저 4정단에 대해 생각하면 아직 생기지 않은 정진각지는 일어나게 하고 이미 생긴 정진각지는 거듭 생겨 더욱 많아지게 한다. 이것을 정진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희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희열과 희열의 경계가 있는데, 그것을 생각하면 아직 생기지 않은 희각지는 일어나게 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희각지는 거듭 생겨 더욱 많아지게 한다. 이것을 희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의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몸의 쉼과 마음의 쉼이 있는데 이것을 생각하면 아직 생기지 않은 의각지는 일어나지 않고, 이미 생긴 의각지는 거듭 생겨 더욱 많아지게 한다.

어떤 것을 정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4선(禪)이 있는데, 그것을 생각하면 생기지 않은 정각지는 일어나게 하고, 이미 생긴 정각지는 거듭 생겨 더욱 많아지게 한다. 이것을 정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사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세 세계가 있는데,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단계(斷界) · 무욕계(無欲界) · 멸계(滅界)이니, 그것을 생각하면 아직 생기지 않은 사각지는 일어나게 하고 이미 생긴 사각지는 거듭 생겨 더욱 많아지게 한다. 이것을 사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한다.

— 제27권 제715경 〈식경〉(食經)  

그리고 《잡아함경》 제27권 제737경 〈칠도품경〉(七道品經)에 따르면 7각지는 차례로 일어난다.

 

T02n0099_p0196c21║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

T02n0099_p0196c22║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所謂覺分。何等為
T02n0099_p0196c23║覺分?」 諸比丘白佛:「世尊是法根、法眼、法依,唯
T02n0099_p0196c24║願為說。諸比丘聞已,當受奉行。」 佛告諸比
T02n0099_p0196c25║丘、比丘尼:「七覺分者,謂七道品法。諸比丘!此
T02n0099_p0196c26║七覺分漸次起,漸次起已,修習滿足。」 諸比丘
T02n0099_p0196c27║白佛:「云何七覺分漸次起,漸次起已,修習滿
T02n0099_p0196c28║足? 「若比丘身身觀念住,彼身身觀念住已,專
T02n0099_p0196c29║心繫念不忘,當於爾時方便修念覺分;方
T02n0099_p0197a01║便修念覺分已,修習滿足,謂修念覺分已,
T02n0099_p0197a02║於法選擇,當於爾時修擇法覺分方便,修
T02n0099_p0197a03║擇法覺分方便已,修習滿足。如是精進、喜、
T02n0099_p0197a04║猗、定、捨覺分亦如是說。如內身,如是外
T02n0099_p0197a05║身、內外身,受、心、法法觀念住,專心繫念不
T02n0099_p0197a06║忘,當於爾時方便修念覺分,方便修念覺
T02n0099_p0197a07║分已,修習滿足。乃至捨覺分亦如是說,是
T02n0099_p0197a08║名比丘七覺分漸次起,漸次起已,修習滿足。」
T02n0099_p0197a09║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각지[覺分]라 말했는데 어떤 것을 각지라고 하는가?”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눈이시며, 법의 의지처이십니다.

원컨대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희 비구들은 마땅히 그것을 듣고 받들어 행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와 비구니들에게 말씀하셨다.

“7각지란 7도품(道品)을 일컫는 말이다.

비구들아, 이 7각지는 차례로 일어나는데, 차례로 일어나면 그것을 닦아 익혀 원만히 구족해야 하느니라.”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7각지는 어떻게 차례로 일어나며, 차례로 일어나면 어떻게 닦아 익혀 원만히 구족해야 합니까?”

“만일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고,

그가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문 뒤에는

전일한 마음으로 생각을 집중하여 잊지 않으면,

그때 염각지를 방편으로써 닦고,

염각지를 방편으로 닦은 뒤에는 닦고 익힌 것을 원만히 구족하게 된다.

이른바 염각지를 닦은 뒤에 법을 선택하고 가리면

이때 택법각지를 방편으로써 닦고,

택법각지를 방편으로써 닦은 뒤에는 닦아 익힌 것을 원만히 갖추게 된다.

이와 같아서 정진각지 · 희각지 · 의각지 · 정각지 · 사각지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안의 몸과 마찬가지로 바깥의 몸 · 안팎의 몸 · 느낌[受] · 마음[心] · 법(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전일한 마음으로 생각을 집중하여 잊지 않으면,

그때 염각지를 방편으로써 닦고, 염각지를 방편으로써 닦은 뒤에는 닦고 익힌 것을 원만히 구족하게 되며, …… (내지)……사각지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비구가 7각지가 차례로 일어나는데,

차례로 일어난 뒤에는 닦아 익혀 원만히 구족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 《잡아함경》 제27권 제737경 〈칠도품경〉(七道品經)    

8정도

8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 · 정사유(正思惟) · 정어(正語) · 정업(正業) · 정명(正命) · 정정진(正精進) · 정념(正念) · 정정(正定)를 말한다.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에서는 8정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T15n0604_p0181a27║佛言:「諸

T15n0604_p0181a28║比丘!若彈指間,惟行正見(정견),以知古知始知
T15n0604_p0181a29║終,知內知外,知苦知習知盡知道,知佛知
T15n0604_p0181b01║法知比丘眾,知學行事如六合,所習所取,歡
T15n0604_p0181b02║樂變失,及其歸趣,知不貪之德,是為正見,為
T15n0604_p0181b03║精進行禪,為如佛教,不是愚癡食人施,何況
T15n0604_p0181b04║多行者,撮取其要;若彈指間,惟行正思(정사유),為思
T15n0604_p0181b05║出家、思不諍、思不殺;若惟行正語(정어)、不妄語、不
T15n0604_p0181b06║兩舌、不惡口、不形笑;若惟行正命(정명),不以貪生
T15n0604_p0181b07║活,不恚生活,不以癡生活;若惟行正業(정업),不殺、
T15n0604_p0181b08║不盜竊、不邪婬;若惟行正治(정정진),以修治四意斷(4정단)
T15n0604_p0181b09║之事;若惟行正念(정념),以受行四意止(4념처),亦惟行正
T15n0604_p0181b10║定(정정),以思念四禪事,事皆同如上說,其彈指間
T15n0604_p0181b11║功德如是,何況多行者;是故可念行八正道(8정도)。」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정견(正見)을 행하여

옛적을 알고 지금을 알며 처음을 알고 나중을 알며,

안을 알고 바깥을 알며,

고(苦)를 알고 습(習)을 알고 진(盡)을 알고 도(道)를 알며,

부처님을 알고 법을 알고 비구 대중을 알며, 학행(學行) 하는 일에서

저 6합(合)의 습(習)하는 바와 취(取)하는 바와 환희함과 변실(變失)함과 그 귀취(歸趣)를 알며, 탐하지 않는 덕을 안다면,

이것이 바로 정견(正見)이요

정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며,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이니,

어리석은 사람이 남의 보시만 먹는 것이 아닐진대,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 요체를 모아 잡아서 만약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에도

오직 정사유(正思惟, 정사 正思)를 행하여

출가(出家) 하기를 생각하여 다투지 않기를 생각하고 살생하지 않기를 생각하며,

만약 오직 정어(正語)를 행하여 망녕된 말을 하지 않고 양설(兩舌)을 하지 않고 악구(惡口)를 하지 않고 함부로 웃지 않으며, 만약 오직 정명(正命)을 행하여 탐욕으로 생활하지 않고 성냄으로 생활하지 않고 어리석음으로 생활하지 않으며,

만약 오직 정업(正業)을 행하여 살생하지 않고 훔치지 않고 사음(邪婬)하지 않으며,

만약 오직 정정진(正精進, 정치 正治)를 행하여 4정단(四正斷, 4의단 四意斷)의 일을 닦아 다스리며,

만약 오직 정념(正念)을 행하여 4념처(四念處, 4의지 四意止)를 수행하며,

또한 오직 정정(正定)을 행하여 4선(禪)의 일을 생각한다면,

모두 위에서 설한 바와 같으니,

그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의 공덕도 이와 같은데 어찌 하물며 많이 행한 이이겠느냐? 그

러므로 8정도(正道)를 생각하여 행해야 하느니라.”

— 《불설선행삼십칠품경》(佛說禪行三十七品經)

위의 《불설선행삼십칠품경》과 《중아함경》 제49권 제189경 〈성도경〉(聖道經)에 따르면 8정도는 다음과 같다.

8정도불설선행삼십칠품경중아함경 제49권 제189경 성도경(聖道經)

1. 정견(正見)
  • 옛적을 알고 지금을 앎: 과거와 현재
    즉 인과를 앎
  • 처음을 알고 나중을 앎: 처음과 끝
    즉 연기를 앎
  • 안을 알고 바깥을 앎: 안과 밖 
    즉 12처 즉 일체법을 앎
  • 고(苦) · 습(習) · 진(盡) · 도(道)를 앎:
    고집멸도의 4성제를 앎
  • 부처님을 알고 법을 알고 비구 대중을 앎: 불법승의 3보를 앎
  • 6합(六合)의 습(習)하는 바와 취(取)하는 바와 환희함과 변실(變失)함과 그 귀취(歸趣)를 앎: 6근(六根)을 여실히 통달하여 앎
  • 탐하지 않는 덕을 앎
  • 보시도 있고 재도 있고 또한 주설도 있다고 보는 것[有施 有齋 亦有呪說]
  • 선악의 업도 있고 선악업의 과보도 있다고 보는 것[有善惡業 有善惡業報]
  • 이 세계도 있고 저 세계도 있다고 보는 것[有此世彼世]
  •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다고 보는 것[有父有母]
  • 세상에는 좋은 곳에 이르고 잘 가고 잘 향하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징험하고 성취하여 노니는 참 사람도 있다고 보는 것[世有眞人往至善處 善去善向 此世彼世自知自覺自作證成就遊]
2. 정사유(正思惟)
  • 출가하기를 생각함
  • 다투지 않기를 생각함
  • 살생하지 않기를 생각함
  • 탐욕이 없는 생각[無欲念]
  • 성냄이 없는 생각[無恚念]
  • 해침이 없는 생각[無害念]
3. 정어(正語)
  • 망녕된 말을 하지 않음:
    거짓말을 하지 않음
  • 양설(兩舌)을 하지 않음: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음
  • 악구(惡口)를 하지 않음:
    추악한 말을 하지 않음
  • 함부로 웃지 않음:
    꾸밈말을 하지 않음
  • 거짓말을 여읜 말[離妄言]
  • 이간하는 말을 여읜 말[離兩舌]
  • 추악한 말을 여읜 말[離麤言]
  • 꾸밈말을 여읜 말[離綺語]
4. 정업(正業)
  • 살생하지 않음
  • 훔치지 않음: 도적질하지 않음
  • 사음(邪婬)하지 않음
  • 살생을 여읜 업[離殺]
  • 도둑질을 여읜 업[離不與取]
  • 사음을 여읜 업[離邪婬]
5. 정명(正命)
  • 탐욕으로 생활하지 않음
  • 성냄으로 생활하지 않음
  • 어리석음으로 생활하지 않음
  • 구하는 것이 뜻에 차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축생의 주문을 외우는 등 삿된 방법으로 생활을 존속해 가지 않는 것[若不求無滿意 不以若干種畜生之呪 不邪命存命]
  • 법답게 의복을 구하고 법답게 음식 · 평상 · 탕약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구하는 것[如法求衣被 飮食 牀榻 湯藥 諸生活具]
6. 정정진(正精進)
  • 4정단
  • 4정단
7. 정념(正念)
  • 4념처
  • 4념처
8. 정정(正定)
  • 4선
  •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님[離欲離惡不善之法 至得第四禪成就遊]

위의 두 경에서 정견(正見)에 대해서 설하는 바가 서로 다른데,

이에 대하여 고타마 붓다는 《잡아합경》 제28권 제785경 〈광설팔성도경〉에서 정견 등 

팔정도의 각각은 좋은 세계로 향하게 하는 것과 출세간으로 향하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고 설하고 있다.

즉, 《불설선행삼십칠품경》의 정견은 출세간을 향하는 관점의 내용이고

《중아함경》 제49권 제189경 〈성도경〉은 좋은 세계로 향하는 관점의 내용이다.

 

T02n0099_p0203a21║何等為正見?謂正見有二種,有正見,是

T02n0099_p0203a22║世、俗,有漏、有取,轉向善趣;有正見,是聖、出世
T02n0099_p0203a23║間,無漏、無取,正盡苦,轉向苦邊。何等為正
T02n0099_p0203a24║見有漏、有取,向於善趣?若彼見有施、有說,
T02n0099_p0203a25║乃至知世間有阿羅漢,不受後有,是名世
T02n0099_p0203a26║間正見,世、俗,有漏、有取,向於善趣。何等為正
T02n0099_p0203a27║見是聖、出世間,無漏、不取,正盡苦,轉向苦邊?
T02n0099_p0203a28║謂聖弟子苦苦思惟,集、滅、道道思惟,無漏思
T02n0099_p0203a29║惟相應,於法選擇,分別推求,覺知黠慧,開
T02n0099_p0203b01║覺觀察,是名正見是聖、出世間,無漏、不取,正
T02n0099_p0203b02║盡苦,轉向苦邊。

 

어떤 것이 바른 견해인가? 바른 견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상 사람과 세속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漏]가 있고 취함[取]이 있으면서

좋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성인과 출세간(出世間)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없고 취함이 없어,

바로 괴로움을 없애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세상 사람과 세속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있고 취함이 있으면서 좋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만일 그가 보시[施]가 있고 주장[說]이 있음을 보고,……(내지)……

이 세상에 어떤 아라한이 있어 후생(後生)에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이 세간의 바른 견해요,

세상 사람과 세속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있고 취함이 있으면서 좋은 세계로 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성인과 출세간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없고 취함이 없어, 바로 괴로움을 없애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괴로움을 괴로움이라 생각하고, 괴로움의 발생[集]ㆍ소멸[滅]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며,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소멸에 이르는 길이라 생각하여,

번뇌가 없는 생각과 서로 호응하여, 법을 선택하고 분별하여 깨달아 앎을 구하고 지혜로 깨닫고 관찰한다.

이것을 성인과 출세간의 바른 견해로서,

번뇌가 없고 취함이 없어 바로 괴로움을 없애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 《잡아함경》 제28권 제785경 〈광설팔성도경〉(廣說八聖道經)    

또한, 《잡아함경》 제12권 제301권 〈가전연경〉(迦旃延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오로지 정견(正見)에 대해서 설하고 있는데 위의 두 경과는

달리 정견은 유무, 즉, 상견과 단견의 두 극단을 떠난 중도에서 있음과 없음

즉 연기법에 따른 발생과 소멸을 있는 그대로 미혹됨이 없이 스스로 아는 것이라 설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설법을 들은 존자 산타가전연은 그 자리에서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모든 교학은 바로 이 문제

즉 37도품 전체와 그 중의 하나인 정견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지도론》 제19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중생들이 괴로움을 싫어하고 즐거움에 집착되었기에

이런 중생들을 위하여 4성제를 말씀하시어

'몸과 마음 등의 모든 법은 모두가 괴로움이어서 즐거움이 없다.

이 괴로움의 인연은 애착[愛] 등의 모든 번뇌에서 유래한다.

이 괴로움이 다한 곳을 열반이라 하며,

방편[즉, 37도품, 6바라밀]으로 열반[즉, 정견, 각]에 이르니

이것을 일컬어 도[즉, 불교]라 한다.' 하셨다."

한편, 아함경과 니까야에 나오는 37도품과 관련된 경들에 의거할 때

구체적인 수행 기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초기불교의 수행법이란 사실상 4념처 수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T02n0099_p0085c17║如是我聞: 一時,佛住那梨聚落深林

T02n0099_p0085c18║中待賓舍。 爾時,尊者[跳-兆+散]陀迦旃延詣佛所,
T02n0099_p0085c19║稽首佛足,退住一面,白佛言:「世尊!如世尊
T02n0099_p0085c20║說正見。云何正見?云何世尊施設正見?」 佛
T02n0099_p0085c21║告[跳-兆+散]陀迦旃延:「世間有二種依,若有、若無,
T02n0099_p0085c22║為取所觸;取所觸故,或依有、或依無。若
T02n0099_p0085c23║無此取者,心境繫著使不取、不住、不計我
T02n0099_p0085c24║苦生而生,苦滅而滅,於彼不疑、不惑,不由
T02n0099_p0085c25║於他而自知,是名正見,是名如來所施設
T02n0099_p0085c26║正見。所以者何?世間集如實正知見,若世間
T02n0099_p0085c27║無者不有,世間滅如實正知見,若世間有
T02n0099_p0085c28║者無有,是名離於二邊說於中道,所謂此
T02n0099_p0085c29║有故彼有,此起故彼起,謂緣無明行,乃至
T02n0099_p0086a01║純大苦聚集,無明滅故行滅,乃至純大苦聚
T02n0099_p0086a02║滅。」 佛說此經已,尊者[跳-兆+散]陀迦旃延聞佛所
T02n0099_p0086a03║說,不起諸漏,心得解脫,成阿羅漢。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리(那梨)라고 하는 마을 깊은 숲 속에 있는 대빈사(待賓舍)에 계셨다.

그때 존자 산타가전연(跚陁迦旃延)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正見]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세존께서 시설하신 바른 소견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산타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유(有)와 혹은 무(無)이다. 취함[取]에 부딪히고,

취함에 부딪히기 때문에 혹은 유에 의지하고 혹은 무에 의지한다.

만일 이 취함이 없다면 마음과 경계를 얽어매는 번뇌를 취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괴로움이 생기면 생겼다고 보고, 괴로움이 소멸하면 소멸했다고 보아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래가 시설한 바른 소견이니라.

왜냐하면 세간의 발생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본다면 세간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세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면 세간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것을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 《잡아함경》 제12권 제301경 〈가전연경〉(迦旃延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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